한때 시대를 풍미한 유명 연예인이었지만 지금보면 놀라는 그녀들의 충격적인 근황

글로리아 입

80~90년대에 깜찍한 외모로 큰 인기를 끈 글로리아 입은 1973년 홍콩 출생의 가수 겸 영화배우로 본명은 엽온의 인데

전성기에 주로 일본에서 활동 했기 때문에 일본 활동명인 글로리아 입으로 알려져 있죠

13살에 길거리 캐스팅 되어 아역 배우로 활동하다 1988년 <공작왕> 1, 2편이 캐스팅 되어 홍콩영화계에 데뷔하게 됩니다.

이후 성룡 영화 <미라클>에 출연하며 글로리아 입만의 귀여운 여동생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가수로도 성공해 히트곡도 있었고 노래에도 일가견이 있는 엔터테이너로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여배우였죠

그녀의 결혼

글로리아 입은 잘나가는 만큼 많은 남자들의 구애를 받았는데 그 중 홍콩 재벌인 천보하이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영국에서 촬영 중일 때 감기에 걸리니 개인 전용 비행기를 타고 영국까지 날아와 함께 병원으로 가주고 걱정해 주었다는 일화는 유명한데요

결국 글로리아 입은 그의 프로포즈를 받아 들입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스물 두 살의 어린 나이였죠

결혼 글로리아 입은 아이를 임신 했고 남편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무관심하게 변하더니 바람까지 피었고 시부모도 그녀에게 막말을 퍼부었습니다.

그러곤 남편이 이혼을 요구했고 그녀가 거절하자 “너 줄돈은 한푼도 없으니 배째” 라고 했습니다.

결국 철저하게 혼자 남겨진 글로리아 입은 이혼을 결심하고 아이 양육권만 달라고 요구했죠

법원에선 위자료 800만 홍콩 달러(현시세 약 12억원)와 매월 5천 홍콩달러 주라고 판결을 내리고 5년만에 이혼하게 됩니다.

하지만 전남편은 위자료는 커녕 언론 매체에 그녀는 성욕이 강한데다 사치와 허영이 심한 여자라는 발언을 해 그녀가 재개하려 할 때도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이후 궁핍한 생활로 부동산 판매처 여직원으로 근무하기도 했고 그녀의 소식을 알게 된 성룡의 도움으로 단역이지만 다시 연기할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연기하고을 경영한다고 하며 아들 딸을 키우며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비비안 수

비비안 수는 1990년 대만에서 열린 최고 미소녀 예능 컨테스트 대회에서 우승하며 연예계의 데뷔했고 “소녀대”의 멤버로 가수로도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소녀대 활동 이후 1994년 만19세로 성인이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누드 화보를 발간 해서 큰 충격을 주었죠

이때 소속사가 엄청 설득 시켰다는데요. 하필 비비안 수의 집안 형편도 좋지 않아 촬영을 결심했고 썩 내키지 않는 상태에서 촬영했지만 흥행에도 성공하고 인기도 얻었습니다.

이후 노출에 자신감이 붙었는지 로맨스 영화 2편에 주연으로 출연해 베드신은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청순함과 요염함을 겸비한 매력으로 1995년 일본의 스카우트되어 각종 쇼와 드라마에서 인기를 누렸고

1997년에는 일본의 혼성 3인조 댄스 그룹 “블랙 비스킷” 멤머로도 활동하며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하기도 했죠.

우리나라에서도 90년대 중반 이후 노래나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온라인 중심의 팬층을 확보했으며 1997년의 메모리즈로 유명한 가수 사준과 듀엣으로 함께 라는 곡을 부른 적이 있습니다.

대만 최고 여자 연예인이란 이미지를 갖고 일본과 대만, 중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그러다 40살의 나이에 2살 연하 싱가폴 해운 그룹 CEO인 리언평과 결혼식을 올렸는데요 리원평은 전부인과의 사이에서 딸이 두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최근 남편의 사업이 2400억이 넘는 채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해 그 빚을 갚기 위해 연예계로 복귀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비비안 수는 남편을 향한 믿음과 사랑은 여전했습니다. SNS의 역경이 우리의 감정을 더욱 깊어지게 했다고 적어 남편과 굳건한 사랑을 드러냈습니다.

👉 활발한 연예 활동 중 갑자기 속세를 떠나 스님이 되어 산속으로 가게된 이유들

👉 한국 방송 “미녀들의 수다”에서 인기 끌다 이런 행동 때문에 결국 구속까지 당한 외국인!

👉 그 시절 홍콩 4대 천왕이라 불린 홍콩 스타들은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들의 현재 근황